5월 14일 오늘은 스스로 부여한 '쉬는 날', 지난 달에는 연분홍 벚꽃들이 눈부셨던, 지금은 오월의 말간 초록빛이 찰랑이는 봉숫골 나무그늘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근사한 공간에 앉아서 달콤한 생강라떼를 다 마시고 나서, 쭉 생각만 해왔던 허브편지를 적기 시작해봅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날마다 작업복 차림으로 거칠고 고된 일들을 하다가, 오랜만에 셔츠와 치마를 꺼내입고서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타자를 치려니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듯 어색한 기분도 드네요.
올해 안으로 옮겨가야할, 통영 바닷가 마을의 작은 집을 고치기 시작한지 약 1달 반이 넘어갑니다. 오사카에서도 대전에서도 공간을 직접 수리해본 적은 있지만, 80년 넘은 낡은 집의 바닥과 벽을 뜯어내며 대대적인 수리를 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가, 어찌저찌 위기를 넘기고, 다시 다른 문제가 닥치고.. 이렇게 크고 작은 오르내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느라 진행 속도도 무척 더디고요.. 앞으로 닥쳐올 과정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어떻게 벌어질지 긴장이 됩니다. 아니지, 괜한 걱정을 미리 하진 말자고, 그저 닥쳐오는 일들을 슬기롭게 기꺼이 잘 헤쳐나가보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 눈을 들어서 먼 곳을 바라봅니다. 마음속 막연한 두려움들을 골라 집어내고서 그 빈자리에 용기와 힘을 내려놓아봅니다.
올해 초 다가올 일정을 살펴보고 스케줄 노트에 옮겨적으면서 '6월 초 + 9월 초 + 12월 초 허브 꾸러미 발송' 은 굵은 글씨로 힘주어 적고 밑줄도 세게 좍좍 그어두었지요. 스스로에게 그리고 허브 꾸러미 회원분들께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이었거든요. 이런 표현이 알맞을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거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 굳은 약속은 마치, 동화 '해님달님' 속 동아줄처럼 든든한 믿을 구석이자 기댈 곳이 됩니다. 막막한 모험이 이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오랫동안 이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나의 일이 분명하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할까요. 그래서 다른 때보다 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틈틈이 6월 초 발송할 꾸러미 작업을 미리 준비해왔습니다. 5월 말에는 짤막하게 일본에 다녀오게 되었는데요, 오랜 친구 유키노씨의 초대로 전시회에 참여합니다. 6월 초 일본에서 바로 통영으로 돌아온 다음, 꾸러미를 잘 포장해서 6월 둘째 주 발송하려는 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