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22 씀) 부산발 통영행 시외버스 안에서 이번 허브 편지를 시작해봅니다. 이달 초 꾸러미 발송 후 바로 허브편지를 적으려 했는데, 몰아치는 일들 속에서 도무지 그럴 짬이 나질 않았어요. 그새 저희는 손수 수리중인 집의 낡은 지붕을 없애고 새 지붕을 얹었습니다. 아직 마무리할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끔한 새 지붕을 얹은 모습이 반갑고 낯설고 무엇보다도 신기합니다. 몇 달 전부터 머릿속에서만 떠올려온 장면이 실제로 이뤄진 셈이니까요. 막막해보이던 ‘셀프 지붕공사’, 저희 두 사람뿐이었더라면 할 수 없었을 텐데요, 든든한 오랜 친구 산하님이 준비부터 진행까지 적극적으로 또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셨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서 거들어준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그리고 인정 많으신 마을 분들의 관심과 지원 덕분에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무사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크디큰 고마움은 앞으로 차차 되갚아나가야겠지요.
이렇듯 바쁜 일정이 계속 이어지던 중, 가까운 친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토요일 오후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친구를 위로하고, 오랜만에 한데 모인 친구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오늘 아침엔 광안리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다함께 ‘풀밭에 누워 바라보는’ 허브티를 우려서 마셨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전에, 따뜻하게 우린 차를 작은 찻잔에 조금씩 따라 마시니 좋더라고요. 친구가 새로 마련했다며 꺼내준 찻잔도 마음에 들었는데요, 차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잘 맡을 수 있는 적당한 너비에, 기분 좋은 촉감, 가벼운 무게, 차의 빛깔을 볼 수 있는 밝은 색상. 여러모로 잘 만들어진 알맞은 찻잔이로구나, 싶었습니다. 아, 그리고 찬찬히 차를 누리며 마음도 함께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친구들과 함께여서 차의 맛이 더욱 좋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구,에 대한 생각을 계속 이어가봅니다. 요즘처럼 바깥에서 바삐 일해야 할 때는 커다란 물병에다 듬뿍, 책상에 앉아서 오래 작업을 해야 할 때면 커다란 머그컵이나 텀블러에다 차를 담아 마시곤 하는데요, 그럴 때보다는 알맞은 티포트에 제대로 우려서, 마음에 드는 찻잔에 조금씩 따라 마실 때 차의 맛과 향이 더 잘 느껴지더라고요. 늘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게 아쉽지만요. 그렇다면, 차를 마시는 상황에 따라 1) 조연으로써 ‘거드는 차’, 2) 그리고 주인공으로써 ‘음미하는 차’로, 목적에 알맞게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준비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하는 틈틈이 마셔보겠다고 티포트와 찻잔을 준비해서 책상에 앉았다가, 다른 일들에 마음이 쏠려서 차를 너무 오래 우린다거나,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차를 쏟거나 하는 일들이 자주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오랜 시간 책상에서 작업을 할 땐 간단한 머그컵 하나가 낫다’는 경험치가 쌓이게 되었지요. 곳곳에 가닿은 저의 허브티들이 여유롭게 온전하게 차와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음미하는 차’의 역할로 잘 쓰이기를, 그와 동시에 ‘거드는 차’의 역할로도 알맞게 잘 마셔지기를, 어느 장소에서든 적절한 티타임으로 휴식을 선사할 수 있기를, 만든 이의 작은 바람을 띄워보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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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15 씀) 미처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채 일단 접어두었던 편지를 스무 날이 넘게 지나 다시 이어 씁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의아할 정도로 너무 빠르게 날들이 지나서, 벌써 이렇게 7월 중순을 지나고 있네요. 오늘은 통영발 서울행 고속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서울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중요한 약속이 하나 있어서, 그런 다음 대전 작업실에서 필요한 일들을 해야 해서, 오랜만에 먼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고속버스 명당’ 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들이 꽤 있는데요, 소음이 더 심한 자리, 바퀴가 튀어나온 자리 등등을 피해 중간열의 ‘15번’ 좌석을 골랐어요. 널찍한 창문 너머로 한여름의 초록빛이 휙휙 스쳐지나는 지금 이 고속도로 임시 작업실이 퍽 마음에 듭니다.
‘임시 작업실’ 이라는 단어에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여전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통영 집에서는 거의 캠핑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마땅한 작업공간이 없고, 더군다나 요즘은 너무 더워서 한낮에는 근처 도서관들을 ‘임시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자전거로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작고 알찬 도서관이 한 곳 있고,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가면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더 큰 도서관들이 있어서 다른 어느 때보다도 짬짬이 책을 열심히 읽으며 지내고 있네요. 그런가 하면 ‘원래 작업실’로 작년 내내 준비해서 마련해둔 대전의 공간은 한 달에 며칠밖에 쓰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고... 하지만 더 나은, 더 알맞은 터전을 찾아 움직이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 눈앞에 있는 어려움들은 굳세게 잘 이겨내보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모쪼록, 고마운 도서관 덕분에 부지런히 읽고 있는 여러 책들 중에서 감동을 주는 구절이 많아서 수첩에 옮겨 적어두었는데요, 오래 전부터 쭉 좋아해왔던 일본 교세라 기업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님의 말씀을 옮겨적은 메모를 나눠봅니다. 이 분의 말씀 덕분에 ‘나도 내가 하는 일들에 더욱 열심히 매진해보자. 더 정성을 다해보자’ 결심하게 되었어요.
"열심히 일할 것.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것. 좋은 생각을 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것. 반성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자신을 다스릴 것.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수양하고 인격을 높여나갈 것." 이나모리 가즈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기하게도 그런 결심들에 응답하듯이, 요 며칠 사이 허브티 주문이 이어졌네요. ‘풀밭에 누워 바라보는’, 이번 여름의 블렌딩 허브티를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 추가주문이 들어오기도 했고요, 제게 너무도 고마운 인연, 공주 ‘틈싹’에 여러 종류의 허브티들을 모아 보내드리기로 해서 허브티를 여러 종류 더 만들 예정입니다. 혹시 허브티 추가주문을 원하신다면, 다음 ‘특별주문’ 페이지를 잘 살펴봐주셔요!
* 2025년 7월의 '특별 주문 페이지' :-)
https://forms.gle/hNvxpvBDzC7QvFWd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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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17 씀) 비가 아주 많이 쏟아졌던 제헌절날 저녁, 서울발 대전행 기차 안에서 다시 노트북을 꺼내 적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번 서울행의 또다른 목적이었던, 양평의 ‘종합재미농장’에 다녀왔어요. 10월 말 열릴 뜻깊은 자리를 위해, 쑥과 애플민트를 한아름 얻어왔습니다. 이 허브들과 제가 거둔 허브들, 작업실에 있는 여러 허브들을 블렌딩해서 새로운 허브차를 만들어 선보일 예정입니다. ‘공존’이라는 주제로 열릴 이번 이벤트는 자세한 내용을 곧 다시 알릴게요.
이번 서울 여정에서는 내내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고 또 아주 많은 양분을 얻어왔구나 싶어요. 첫날 제 오랜 단골집 ‘커피상점 이심’에 가서 아이참 아저씨와 주고받았던 대화, 마르쉐 친구들 스탭이자 우리밀과 베이글빵을 너무도 좋아하시는 다정님이 마련하신 햇밀 이야기 자리, 그리고 오랜 친구 지영과 나눴던 일과 삶과 방향에 관한 깊고 묵직했던 대화와, 저희 아부지와 언니네 가족과 함께 보냈던 시간, 마르쉐의 언덕님 그리고 김천의 정운오 농부님과 함께했던 오늘의 양평 방문까지. 짧은 사흘이었지만 좋은 만남, 뜻깊은 대화, 그리고 아름다움들로 마음을 그득 채워 묵직해진 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늘 이렇게 좋은 자극을 한아름 받아들 때마다 마음속 고마움이 더더더 커지고요, 나도 더 좋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같이 자라납니다. 늘 ‘곰과 호랑이 허브’와 함께해주시는 허브 친구들을 향한 고마움도 더 커져갑니다. 머지 않은 조만간, ‘가을의 꾸러미’ 소식으로 다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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